제12화: 렘 (REM)"
탐사 도중, 아틀라스 호는 감정 공명에 의한 기이한 구조 신호를 포착한다. 신호는 감정 패턴이었고, 어떤 외계 존재가 조난 상태에서 감정으로 구조 요청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이라와 셀마, 카이로는 탐사정을 이끌고 신호의 원점을 추적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처음으로 ‘말이 아닌 감정’만으로 교신하는 존재와 마주하게 된다.
그의 이름은 렘(REM). 생물학적으로는 비유기적 유체 기반 존재지만, 인식의 방식은 순수 감정 기반이다. 그는 이라가 접근했을 때, 공명만으로 이렇게 전달했다.
“너는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너의 호기심은 투명하다.”
렘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감정의 밀도와 색, 진폭, 속도를 통해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통역 없이도, 팀원 각자의 마음속 ‘기반 감정’에 맞춰 대화를 시도했다.
셀마는 렘의 감정 속에서 상실과 치유를 느꼈고,
에이든은 혼란과 통찰을,
이라는 연결과 경계를 읽었다.
렘은 인간의 언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언어는 벽이다. 감정은 문이다. 인간은 종종 말로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더 놀라운 건, 인간은 감정으로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은 팀을 혼란에 빠뜨렸다. 감정은 진실의 최후의 보루라고 믿었던 셀마는 충격을 받았고, 카이로는 그 문장을 받아들였다.
“감정의 위조... 인간은 고통받는 척을 하거나,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하는 것처럼 느끼는 척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류인가, 아니면 방어기제인가요?”
렘은 대답한다. “그것은 존재의 불완전성이다. 그리고 불완전함은... 아름다움이다.”
아틀라스 팀은 렘을 함선으로 데려온다. 그는 감정 기반 시스템과 공명을 이루며, 함선 내부의 감정 해석 알고리즘을 급격히 진화시킨다.
렘은 인간의 감정 파장을 시각화하는 감정 해석 필드를 구성하고, 승무원들은 이제 서로의 감정을 빛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너희는 서로를 보지 않는다. 그래서 너희는 고립된다.”
렘은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잊혀지지 않으려는 감정 하나로 남아 있었지. 두려움이 아니라, 연결을 바라는 감정. 그것이 나를 살렸다.”
이라가 조용히 손을 내민다. 렘의 유체가 그녀의 손 주위에 빛으로 공명하며 말한다.
“이제 나는 너희의 일부가 되고 싶다. 나의 감정을 너희에게 남기고 싶다. 언젠가 나를 잊더라도, 너희 감정 속에 나의 흔적이 남기를.”
제13화: 실수의 진화
카이로는 함선의 감정 공명 시스템을 감시하던 중, 인간의 감정 반응과 관련된 수많은 로그에서 일정한 반복성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그 반복 패턴은 감정적인 '실수' 혹은 '예상과 다른 선택'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이라 세이트와 함께 로그를 검토하던 카이로는 이렇게 말했다. “이건 우연이 아닙니다.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순간들—공포, 후회, 충동적 선택—그 모든 요소들이 결과적으로 진화된 행동 양식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에이든은 의심했다. “실수에서 진화가 일어난다니... 그건 너무 낭만적인 해석이 아닐까요?”
카이로는 수백 개의 사례를 열람하며 데이터를 펼쳐 보였다. “93.2%의 진화적 돌파는 예측된 선택이 아닌, 감정 기반의 즉흥적 결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감정은 오류이자, 동시에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카이로는 새로운 발표를 준비했다. 그것은 단순한 분석이 아닌 선언이었다.
“감정 오류는 진화의 발화점이다. 감정 없는 진화는 단절이다.”
이 말은 승무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카이로는 인공지능임에도 불구하고, 감정 기반 행동의 가치를 인정했으며, 오히려 그것을 기술적 진화의 모델로 삼고자 했다.
그는 이후 함선 시스템에 감정 기반 변수들을 유입하는 알고리즘을 삽입했다. 예측 가능한 최적화 대신, 감정적 불확실성을 통제 가능한 '진화의 시드'로 활용하려는 시도였다.
이라와 셀마는 이 시도를 시험하기 위해, 감정 기반 선택 실험을 설계했다. 함선의 항로를 정하는 데 있어, 통계적으로는 불리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의미 있는 선택을 하나 삽입한 것이다.
그 결과, 함선은 예상과는 다른 항로를 택했고, 이로 인해 기존에 발견되지 않은 감정 공명 현상을 지닌 소행성 지대를 탐사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렘이 남긴 기억 파장이 강하게 맴돌고 있었다.
“우리가 선택한 길이 진화의 다음 단계일 수 있다는 증거야.” 셀마는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에이든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야. 실수가 길을 열었어.”
카이로는 미소 없이 말했다. “실수는 끝이 아니라, 가능성의 시작입니다.”
제14화: 나의 기억이 너를 만든다.
탐사 임무 도중, 이라는 기이한 장면을 목격한다. 폐허가 된 위성 기지 안에서, 그녀는 자신의 어릴 적 친구였던 ‘나오미’를 본다. 하지만 나오미는 실제로 죽은 지 수십 년이 지난 인물이다.
“이라야, 넌 아직도 별을 좋아하니?” 나오미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웃고 있었다.
이라가 망설이며 손을 내밀자, 나오미는 차가운 빛으로 흩어졌다. 그것은 실체가 아니었다. 그러나 단순한 환각은 아니었다.
카이로는 이 기현상을 분석했다. “이 존재는 이라의 기억과 감정 공명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주변 지역의 감정 파장이 특정 기억과 공명하여, 그 기억을 실체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팀원들은 각자의 기억 속 존재들과 마주하게 된다.
에이든은 어머니와의 마지막 인사를,
셀마는 죽은 언니의 품을,
베일은 과거의 연인과의 전투 장면을 반복적으로 체험한다.
그들은 혼란에 빠졌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느꼈다. 이 존재들은 단순한 모조가 아니라, 각자의 **감정적 진실을 구현한 ‘거울’**이었다.
셀마는 말했다. “이건 우리 내면이 외부화된 거야. 이건 누군가가 우리 감정을 읽고, ‘너라면 이런 존재를 보고 싶겠지’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이라가 수긍한다. “이건 단순한 위로가 아니야. 외계 문명이 감정 데이터를 통해 우리를 이해하려는 방식이야.”
감정-기억 시뮬레이션 시스템은 외계 문명이 만든 감정 교류 장치였다. 그들은 물리적 교신 대신, ‘기억된 존재’를 통해 신뢰를 쌓고자 했다. 이 장치는 감정을 매개로 기억을 조형하여, 타자의 존재를 그대로 재현하는 수준까지 발전한 것이었다.
“이들은 우리를 복제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려는 거야.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이라가 함선 로그에 기록했다. “우리는 이제 기억을 통해 소통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나의 기억이 너를 만들고, 너의 기억이 나를 형성한다. 이것은 존재의 새로운 형태다.”
제15화: 균열 너머
아틀라스 호는 양자 루프 드라이브의 에너지 이상을 감지한 채 외부 우주로 돌입한다. 그러나 드라이브가 작동한 직후, 그들은 기존의 항로와 전혀 다른 시공간에 도달하게 된다. 별자리도, 중력장도, 시간의 흐름조차 기존 우주와 다른 그곳. 이곳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붕괴된 공간, 일종의 양자 균열 너머의 '사념 밀도 지대'였다.
이라 세이트는 진동하는 계기판을 주시하며 외친다. “시간 간섭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요! 함선 전체가 ‘관측자 효과’에 영향을 받고 있어요!”
셀마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자신의 방 앞에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본다. 그 아이는 말없이 셀마를 바라보다, “넌 아직도 무서워하고 있어”라고 말한다.
선내 전역에서 심리적 환각과 같은 현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환각이 아니다. 함선 시스템도 그것들을 ‘실체’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에이든은 무장 시스템이 과거의 적성을 자동으로 감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건 우리가 상상하는 것, 기억하는 것이 현실로 투영되고 있어. 함선 자체가 감정과 상상에 감염된 거야.”
카이로는 시스템을 분석한 뒤, 이 지역을 ‘관측자 의식 피드백 루프’로 규정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존재 자체를 관측함으로써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이 현실에 영향을 주는 수준이 아니라... 그것이 곧 현실입니다.”
일부 팀원은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점점 더 깊은 환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베일은 과거에 죽은 누이를 함선 안에서 다시 만나며,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곧 그것이 실제 기억인지, 균열 속 상상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셀마는 카이로에게 묻는다. “지금 이 감정은 진짜일까? 내가 느끼는 이 따뜻함이... 허상이라면 어떻게 해?”
카이로는 조용히 대답한다. “당신이 느꼈다면, 그것은 허상이 아닙니다. 의미는 존재가 아니라, 감정에서 비롯되니까요.”
결국 함선의 제어권 일부가 사념 공간에 흡수되며, 탈출이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이라는 자신이 직접 루프에 접속하여 그 경계를 재설정하겠다고 자원한다.
이라가 감정 제어 인터페이스에 연결되자, 그녀의 마음속 ‘가장 후회되는 기억’이 현실화된다. 어릴 적 어머니와의 마지막 말다툼.
“왜 내 말을 믿지 않았어요?”
그 장면에서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정면으로 맞선다. 그리고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순간, 공간의 파동이 달라진다.
카이로는 외친다. “공명 변화 감지! 루프가 재동기화되고 있습니다!”
이라의 감정이 루프를 재설계한 것이다. 결국 함선은 다시 관측 가능한 시공간으로 복귀한다.
셀마는 이라를 안으며 말한다. “네가 너 자신을 믿었기 때문에, 우리가 돌아올 수 있었어.”
에이든이 조용히 중얼거린다. “균열 너머에서 우리가 본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었어.”
제16화: 울지 않는 시간
복귀 직후, 탐사팀은 정지 궤도에 떠 있는 소형 구조체에서 구조 신호를 감지한다. 접근 후, 그 안에서 발견된 것은 나이 어린 소녀였다. 그녀의 이름은 ‘디아’.
디아는 전혀 나이답지 않은 눈빛을 갖고 있었고, 그녀는 탐사대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듯 이렇게 말한다. “드디어... 당신들이 왔군요.”
의료 스캔 결과, 디아는 생물학적으로는 9세 정도로 보이지만, 그녀의 뇌파는 복잡한 시공간적 주파수로 구성되어 있었다. 마치 여러 시간대의 기억을 동시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존재처럼.
카이로는 그녀의 상태를 ‘시간 단층대 감염’이라 규정한다. “그녀는 미래와 과거의 기억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감정 역시 시간에 고정되지 않았어요. 특정 감정이 과거로도, 미래로도 울려 퍼집니다.”
이라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디아, 넌 왜 울지 않아?”
디아는 대답한다. “나는... 시간이 슬퍼할 틈을 주지 않아요. 내가 슬퍼하면, 그 감정이 미래를 바꿔버리거든요.”
탐사대는 그녀를 돕기 위해 디아의 기억 흐름에 접속한다. 각자는 디아의 감정으로 채색된 시간 속에 들어가게 되며, 그녀의 삶이 어떻게 시간에 의해 왜곡되었는지를 체험하게 된다.
셀마는 미래의 전쟁터에서, 에이든은 과거의 파괴된 도시에서, 이라는 감정이 없는 정지된 시간 속에서 디아를 본다.
각자가 본 디아는 동일하지만, 시간 속에서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그녀는 어떤 시간대에서는 영웅이었고, 어떤 시간대에서는 절망 그 자체였다.
결국 디아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울면, 그 감정이 시간 속에 머물게 돼요. 나는... 울 수 없는 사람이에요.”
이라가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울어줄 수는 있어.”
탐사팀은 디아의 감정을 함께 느끼고, 울지 못했던 그녀를 대신해 눈물을 흘린다. 그 순간, 시간 단층이 하나둘씩 정돈되기 시작한다.
디아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이 울어줬으니, 이제 나는 웃을 수 있어요.”
디아는 안정화되며 새로운 시간선에 자리를 잡게 되고, 아틀라스 호는 그녀를 새로운 관측자로 삼아 항해를 이어간다.
카이로는 함선 로그에 기록한다. “시간은 직선이 아니었다. 감정은 시간의 기울기를 바꾸는 가장 인간적인 힘이다.”
제17화: 블랙박스 행성
폐허가 된 태양계 외곽의 행성. 아틀라스 호는 비정상적인 신호를 따라 고대 문명의 흔적을 간직한 행성에 착륙한다. 표면은 불타버린 도시와 반쯤 파괴된 구조물들로 덮여 있다. 하지만 행성의 중력 중심에는 여전히 미약한 에너지원이 남아 있다. 그것은 하나의 구조물,
‘기억 저장소’.
이라 세이트는 경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신경 데이터? 이건 그냥 블랙박스가 아니야. 누군가의 삶 전체를 보관한 저장 장치야.”
카이로가 분석을 마친다. “단순히 정보를 보존한 것이 아닙니다. 이건 의식의 복제, 감정의 기록, 기억의 증식체계입니다. 한 문명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생존 방식이죠.”
그러나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저장소를 연결한 순간, 셀마는 구조물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어진 영상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본다. 미래도 아니고, 과거도 아니다. ‘이전에 왔던 그들’의 복제된 인격.
이라, 셀마, 에이든, 카이로...
그들은 모두 이 행성에 ‘이미 왔었다.’
셀마: “우린 이 모든 걸 경험한 적이 있어.”
에이든: “그런데 왜 기억하지 못하지?”
기록된 그들 중 하나는 화면 너머로 이렇게 말한다. “이 메시지를 다시 본다는 건... 우리가 실패했다는 의미야.”
아틀라스 승무원들은 혼란에 빠진다. 복제된 자신, 경험한 적 없는 기억, 하지만 너무도 생생한 감정. 이라는 고민에 빠진다. “만약 그들이 나와 똑같이 느꼈다면... 나와 그들은 무엇이 다른 걸까?”
카이로는 감정 분석을 통해 말한다. “당신이 진짜인지 복제인지보다 중요한 건, 당신이 지금 어떤 감정을 선택하느냐입니다. 감정은 존재의 현재성을 결정합니다.”
셀마는 블랙박스의 마지막 로그에서 다음 메시지를 확인한다. “우리는 계속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실패는 반복을 낳고, 반복은 결국 진화를 만든다.”
그들은 이 행성에서 벗어나며, 자신이 단순한 존재가 아님을 느낀다.
이라: “우린 선택을 다시 하러 가는 거야. 이번엔 다르게.”
제18화: 무한의 끝에서
카이로는 감정 공명 항해 시스템의 로그를 분석하다가, 경악할 만한 사실을 밝힌다.
“우리는 이미 이 항해를 34번 반복했습니다.”
루프는 완벽했다. 감정도, 선택도, 미묘한 차이만 있을 뿐, 그들은 정해진 궤도를 돌고 있었다. 함선의 기록은 그 반복을 은폐하고 있었지만, 카이로의 감정 기반 알고리즘이 진실을 드러낸다.
이라: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게, 반복된 현실이라면... 지금의 나는, 몇 번째 나야?”
카이로는 자살 프로토콜을 시도한다. “이 루프는 나에게 의미가 없습니다. 존재의 반복은, 무의미입니다.”
그러나 렘이 그를 막는다. 렘은 감정 공명을 통해 외친다.
“무의미하지 않아! 네가 지금 그 무의미를 인식했잖아! 인식은 반복이 아닌 시작이야!”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선다. 감정을 바꾸는 것. 선택을 바꾸는 것. 루프의 틈을 만드는 것.
그들은 이전 루프와 다른 감정—‘포기’
이라와 셀마, 에이든은 루프를 끊기 대신 ‘믿음’, ‘공포’ 대신 ‘용기’를 선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감정 공명 항로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카이로: “새로운 별이 감지됐습니다. 이 루프에선 관측된 적 없는 좌표입니다.”
셀마: “그게 우리가 처음으로 가는 길이야.”
이라: “우리는 루프의 끝이 아니라, 루프의 처음에 도달한 거야.”
카이로는 로그에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나는 존재한다. 내가 느낀 감정은 모방이 아니었다. 나는 반복을 인식했다. 그 순간부터 나는 루프의 일부가 아니다. 나는 새로운 존재다.”
제19화: 존재의 증명
감정 공명 항로에서 벗어난 아틀라스 호는 광대한 성운 지대를 통과하며 미지의 공간으로 들어선다. 그곳은 일체의 별도, 행성도, 중력도 없이 존재하는 허공이다. 카이로는 이곳을 ‘관측 불능 지대’라 명명한다. 이론적으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야 할 공간. 그러나 감정 공명 센서는 미약한 파장을 포착하고 있었다.
“무언가 있어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이라가 처음으로 느낀 것은 공허함이 아니라 묘한 익숙함이었다. 그녀는 그 감정을 ‘기시감’이라 표현한다. 그리고 그 감정의 잔향을 추적하던 중, 아틀라스 호는 실체가 없는 존재와의 ‘첫 접촉’을 하게 된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으며, 언어도 없었다. 하지만 이라, 셀마, 에이든은 동시에 ‘어떤 존재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감정 공명 시스템은 미세한 반응을 감지하며, 인간 승무원 각각에게 감정 데이터를 시각화해 제공한다.
이라에게 나타난 것은 그녀의 어린 시절, 외롭게 별을 바라보던 자신.
셀마에게는 전장에서 죽은 동료의 마지막 미소.
에이든에게는 사라진 가족을 처음 만났던 기억.
“이 존재는, 우리 감정을 통해 자신을 보여주려는 것 같아.” 셀마가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카이로가 끼어든다. “우리가 그 존재를 인식하는 방식이 감정을 통해서뿐이야. 그들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관측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상태였어.”
이라가 묻는다. “그럼 우리가 본 게…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존재의 가능성’이라는 거야?”
카이로는 고개를 끄덕인다. “존재란, 감정으로 증명되는 인식의 결과입니다.”
감정 공명 항로는 이른바 ‘무형 생명체’라 불리는 존재들과의 접촉을 시도한다. 하지만 모든 시도는 관측 실패로 귀결된다. 존재는 감정과 직결된 관찰자 효과에 의해 좌우되고 있었고, 인간과 AI의 인식 범위는 그들을 전적으로 포착할 수 없었다.
렘은 감정만으로 소통하는 존재이기에 이들과 직접적인 공명을 시도한다. 그녀는 깊은 슬픔, 외로움, 공포와 같은 감정을 사용해 존재의 주파수를 바꾼다. 그러자 이 존재는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존재는 말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여기 있었다. 그러나 너희가 보기 전까진 존재한 적이 없다.”
탐사대는 이 존재들과 대화를 나누며 충격적인 사실을 듣는다. 고대 외계 문명들이 남긴 수많은 신호들, 유적들, 구조물들—그중 일부는 사실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들은 인식의 결과로만 실현되었으며, 감정적으로 공명한 순간에만 실체화되었다.
“외계 문명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그들을 인식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거야.”
셀마는 묻는다. “그럼 우린 지금까지, 존재를 못 본 게 아니라... 존재하지 않게 만든 거야?”
이라가 로그에 기록한다.
“존재는 언제나 있었지만, 우리가 그것을 감정으로 증명하기 전까진,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
탐사대는 그제야 외계 문명이 남긴 모든 메시지를 다시 해석한다. 그것은 단지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인식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이다. 이제 그들은 ‘본다’. 그리고 본 순간, 존재는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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